롤 모델이 되는 삶
김은비 디자이너, 지체장애
인터뷰 임나리
사진 김은혜
4살 때 교통사고를 당했다. 왼쪽 팔을 크게 다쳤고, 신경이 점차 죽었다. 병원의 권유로 왼쪽 팔꿈치 위쪽까지 절단하는 수술을 했다. 어릴 때는 자신의 장애를 크게 인지하지 못하고 지내다 중학교를 다니면서 처음으로 주변의 시선을 의식한 기억이 있다. 그러다 의수 착용을 결정했다.
“도태되기 싫다”는 마음에 늘 자신을 채찍질하며 살아온 그는 세상에 더 많은 장애인들의 이야기가 전해지길 바란다고 말한다. 2012년 삼성전자에 입사해 현재는 UX 리서치와 인터렉션 디자인 업무를 하고 있다.
“상황에 맞게, 내 앞에 주어진 일들을
해나가면서 길을 찾았다”고 말하는 김은비 님.
화가가 꿈이었던 어린 시절을 지나 좋아하고,
잘하는 일을 찾아 디자이너가 되었다.
장애를 “나의 플러스 포인트”라고
말하는 김은비 님은
‘천천히 하되 꼼꼼하게 하자’는 마인드로
업무의 불편함을 해결하고 있다.

“언젠가 꼭 자서전을 쓰고 싶다는
친구가 있는데요.
그 친구가 저더러 너무 부럽다는 거예요.
왜냐하면 자신의 자서전과 저의 자서전은
깊이가 너무 다를 것 같다는 거죠.”

작업 중인 김은비 님 ⓒMissionit
디자이너로 재직 중이시죠. 어떤 업무를 하고 계신가요?
회사가 갖고 있는 기술, 연구소에서 개발하고 있는 기술이 많잖아요. 그런 기술들이 기술적인 로드맵만 가지고 진행되는 경우가 많은데요. 이 기술들이 사용자 레벨에서는 어떤 가치를 가질 수 있을지를 생각해야 하죠. 그런 부족함을 개선할 수 있도록 디자인적으로 접근하는 일을 하고 있어요. 짧게는 2-3년 뒤, 길게는 10년 뒤에는 ‘이런 기술로 사용자들의 삶이 이렇게 나아질 것’이라고 가치 제안을 해주는 일이고요. 미래 시나리오를 그리는 일이라고 생각하셔도 좋을 것 같아요.
현재 진행하고 있는 업무에 대해 들려주실 수 있나요?
기술 리서치, 사용자 트렌드 리서치를 해서 어떤 기술이 사용자에게 어떠한 가치를 줄 수 있는지를 먼저 평가하고요. 사용자에게 전에 없던 가치, 더 나은 가치를 줄 수 있는 기술이라고 판단을 하면 기술 개발 부서에 제안을 해요. 그렇게 협의하고, 방향성을 찾아가는 일이라고 볼 수 있어요. 제가 속한 팀 안에는 제품 디자이너, 인터렉션 디자이너도 있고요. 전략 담당자, 기술 담당자도 있어서요. 같이 협업해서 업무를 진행하죠. 제 경우 그래픽 디자인을 하니까 사용자 경험을 반영한 기술을 디자인화 하는 일을 하고요.
김은비 님의 어렸을 때 꿈도 디자이너였나요?
아주 어릴 때는 화가가 되고 싶었어요. 그 다음에는 만화가도 꿈꿨고, 변호가를 꿈꿀 때도 있었어요. 관심 있는 분야가 많았어요. (웃음) 결국 어릴 때부터 관심이 있었던 예술 분야로 돌아온 거고요. 그 중에서도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을 찾았고, 디자인 쪽으로 진로를 정했죠. 디자인도 광범위한 분야여서 그 안에서 조금씩 해보면서 저한테 맞는 일을 찾아온 것 같아요. 또 상황에 맞게, 내 앞에 주어진 일들을 해나가면서 길을 찾았다고 볼 수 있어요.
디자인으로 진로를 결정한 뒤에는 구체적으로 어떤 과정을 거쳐 취업을 준비하신 건가요?
운이 좋았어요. 대학생 때 ‘삼성 디자인 멤버십’이라는 프로그램에 참여를 하게 됐거든요. 그 뒤 자연스럽게 입사를 한 경우예요. 멤버십도 미술학원 보조 강사 아르바이트를 할 때 같이 일했던 선생님이 권유해주신 덕분에 하게 된 거라 진짜 운이 좋았던 것 같아요. 주변에 있는 좋은 분들의 도움을 받았기 때문에 취직 준비에 있어서 고생을 많이 하지는 않은 편이죠.
기회가 연결이 되고, 내 앞에 놓인 일을 하면서 지금의 자리에 오게 된 거군요.
맞아요. 회사에 들어와서도 자기계발은 계속 해야 하거든요. 저 스스로도 제 부족한 부분을 더 발전시키고 싶은 마음이 있고요. 최근에는 잠시 휴직을 하고 석사과정을 영국에서 하고 왔는데요. 그런 식으로 그때 그때 나의 부족한 부분을 보강하면서 해온 것 같아요. 비교적 충실하려고 노력하는 편인 것 같아요.
의수를 착용하신 입장에서 실제 업무를 하면서 겪는 불편함은 뭔가요?
저는 한 손으로 업무를 해요. 키보드도, 마우스도 다 사용할 수 있는데요. 대신에 잘하는 다른 디자이너 분들에 비해 업무 속도가 느릴 수밖에 없어요. 단축키 사용도 힘들고요.(웃음) 그래서 저는 ‘천천히 하되 꼼꼼하게 하자’는 마인드로 일을 해요. 내가 부족한 부분은 어쩔 수 없으니까 다른 부분을 최대한 해서 디테일한 부분을 잘하는 사람이 되도록 말이에요. 저는 제 장애가 삶에 있어 크게 불편하지 않거든요. 오히려 제가 가장 불편하다고 느끼는 부분은 주변의 인식, 그리고 내가 느끼는 주변의 인식이에요. 그것을 제외하면 불편함은 거의 없어요.
취업을 준비하는 장애인 분들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는 뭔가요?
요즘 생각이 조금 바뀐 건데요. 장애가 있기 때문에 내가 좀 더 특별해진다는 느낌도 들더라고요. 남들과 다른 경험도 할 수 있잖아요. 취업을 할 때도 장애가 돋보이는 포인트가 될 수도 있고요. 꼭 취업이 아니더라도 장애는 나의 플러스 포인트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최근에 하게 됐어요. 언젠가 꼭 자서전을 쓰고 싶다는 친구가 있는데요. 그 친구가 저더러 너무 부럽다는 거예요. 왜냐하면 자신의 자서전과 저의 자서전은 깊이가 너무 다를 것 같다는 거죠. 저의 자서전이 특별해질 것 같다는 말을 듣고 이렇게도 볼 수 있구나, 생각하게 됐어요. 내게 장애가 있기 때문에 오히려 다른 사람들이 가지지 못하는 경험을 추가적으로 할 수 있었구나, 하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