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존엄성을 위한 임시보호소 건축
슬라바 발벡 Slava Balbek
발벡 뷰로Balbek Bureau 대표
인터뷰 미션잇 편집부
사진 Balbek Bureau
인류 역사에서 전쟁만큼 상처와 아픔을 남긴 것은 없다. 지난 2022년 2월 24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인해 우크라이나의 누적 난민은 천만 명을 넘어섰고 수만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유니세프UNICEF(United Nations Children’s Fund)의 통계에 따르면 2022년 10월 기준 우크라이나 난민의 90%는 여성과 어린이이며, 이들은 남편과 아버지를 전쟁터에 보낸 아픔과 전쟁으로 인한 불안, 스트레스 등으로 정신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다.57 우크라이나 키이우Kyiv에 본사를 둔 건축 스튜디오 발벡 뷰로는 이러한 피난민들을 위해 임시보호소 건축과
폭격으로 파괴된 마을을 재건하는 리우크라이나 프로젝트Re:Ukraine Project를 진행하고 있다. “사람들의 집은 빼앗아 갈 수 있지만, 존엄성은 빼앗을 수 없다”라고 강조하는 발벡 뷰로의 대표 슬라바 발벡을 만나보자.

슬라바 발벡 ©Balbek Bureau
리우크라이나 프로젝트Re:Ukraine Project에 대해 소개 부탁드립니다.
리우크라이나 프로젝트는 3가지 방향으로 진행됩니다. 첫 번째 하우징 프로젝트Re:Ukraine Housing Project는 난민 임시보호소 신설 사업이고, 두 번째 빌리지 프로젝트Re:Ukraine Village Project는 폭격으로 파괴된 작은 마을들을 재건하는 사업입니다. 마지막으로 기념물 프로젝트Re:Ukraine Monument Project를 통해 러시아 공격으로부터 주요 기념물을 보호하는 구조물을 설치하고, 파괴된 도로를 재건하는 동시에 추모 장소로 바꾸고 있어요.
보호소 신설에 발빠르게 움직이고 계시는 걸로 알고 있는데, 하우징 프로젝트는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요?
먼저 우크라이나 서쪽에 위치한 즈브라Zbarazh 라는 작은 도시에서 임시보호소 건설을 준비하고 있어요. 11만 평 정도 되는 부지에 시민 5000여명을 수용하는 대규모 사업이라 인프라 문제도 동시에 고민하고 있습니다. 임시보호소는 체르니우치Chernivtsi와 부차Bucha에도
준비 중입니다. 부차는 이번 전쟁 중에 대량 학살이 발생한 도시죠. 영국 건설회사와 협력해 1.5만 평에 1800명 정도 수용할 수 있는 시설을 지을 계획입니다. 얼마 전 부차 지방 정부와 MOU를 체결하고 부차 시에서 직접 부지를 제공했어요. 현재 시공 전 시뮬레이션을 진행하는 단계에 와 있고 이번 달 부터 본격적으로 공사를 시작할 예정입니다. 그 외에도 파일럿 프로젝트 자금을 모으기 위해 모금활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Re:Ukraine Housing Project ©Balbek Bureau
“사람들의 집은 빼앗아 갈 수 있지만, 존엄성은 빼앗을 수 없다”라는 말이 깊은 울림이 있었는데요.
발벡 뷰로가 추구하는 궁극적인 목표가 바로 존엄성입니다. 인간의 존엄성은 무슨 일이 있어도 지켜져야 한다는 뜻이에요. 삶의 어느 단계에 와 있든 마찬가지죠. 저희는 그 중에서도 임시로 거쳐가는 단계, 즉 임시보호소에서 지내는 시간에 집중하기로 한 겁니다. 이곳에 사는 시간이 6개월이 되든, 1년이 되든 주민들이 가능한 한 가장 편안한 환경을 누릴 수 있어야 해요. 바로 이런 시기에 발벡 뷰로가 해야 할 일이 있다고 본 거죠.
발벡 뷰로가 정의하는 존엄성이란 어떤 것인가요?
존엄한 삶은 생리적 욕구나 안전에 대한 욕구뿐 아니라 대인관계를 통해 인간이 가진 사회적 욕구가 채워져야 실현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정신적 차원의 상위 욕구가 배제되어서는 안되는거죠. 마음이 편안하고 가족과 친구들이 모두 안전하다는 사실만 확인된다면 어디서 지내든 상관없다는 생각이 들어요. 주변에 편안하게 대화를 나눌 사람이 있다면 실내체육관 같은 곳도 견딜만한 거예요. 난방이 되는지 안 되는지, 하룻밤을 지낼 공간이 있는지 없는지가 치명적인 문제는 아닌거죠. 이처럼 건물이라는 물리적인 환경 뿐만 아니라 그 곳에서 지낼 사람에 대한 고민은 동시에 이뤄져야 합니다. 따로 떨어뜨려 생각할 수 없는 문제예요. 인간의 사회성이나 정신건강을 고려하지 않고는 건축이라는 개념은 존재할 수 없다고 생각해요.
전쟁과 같은 위기의 상황에서 건축가나 디자이너의 역할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사람이 중심이 되는 디자인을 제시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사고의 틀을 건물의 구조에만 가둬서는 안됩니다. 건축학개론에서 배운 내용을 적용하는 것 이상으로 더 인간적인 접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 공간을 실제로 사용할 사람에게 초점을 맞춰야겠죠. 물리적인 환경 이상으로 사용자가 가장 편안하고 정신적으로 건강할 수 있는 공간을 고민해야해요. 이것이 건축가나 디자이너의 기본적인 자세죠. 또 건축이 사람에게 주는 가치의 본질에 대해 깊이있는 고민이 늘 필요하다고 생각하고요.
전쟁 중에 창의력과 영감은 어디에서 얻으시나요?
현재 상황에서 저는 안전한 곳에서는 창의적인 생각이 떠오르지 않아요. 지금은 국경에서 50 키로 떨어진 곳으로 거처를 옮겼어요. 폭격이 매일 발생하는 지역이죠. 또 우크라이나 군대에서 드론 파일럿으로 일하면서 최전방에서 교대로 복무하고 그외 시간에는 키이우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저의 에너지와 영감은 바로 이런 생활에서 나옵니다. 안전지대에 앉아서 뜨거운 커피나 한 잔 하고 있다면 오히려 집중을 전혀 못할 것 같아요. 제 자신을 한계까지 몰아붙이는 일, 그것이 저의 영감의 원천이라고 생각합니다.
리우크라이나 빌리지 프로젝트 사전 답사 현장. 임시보호소 신설뿐 아니라 공습을
당한 마을 재건 사업도 함께 진행하고 있다.
©Balbek Bureau
슬라바 발벡의 인터뷰 전문은 MSV 소셜임팩트 시리즈 4호 <안전>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